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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도 이재명도 싫던 내가 이재명 지지를 호소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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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지난 서울시 재보궐 선거 이후, 오세훈 서울시장이 20대 남성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준석이 갑자기 청년정치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민주당이 페미니즘 정책을 펼치며 젊은 남성을 배제한 탓에 20대 남성의 72.5%가 국민의힘을 찍었다. 이것이 당시 주류 언론과 정치권의 분석이었다. 72.5%라는 숫자는 아무래도 강렬한 데가 있다. 이준석은 그 숫자를 이용해 자신을 소외된 남성을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포장했다. 하지만 당시 20대 남성의 투표율은 대략 40%대였다. 20대 남성의 대략 29%만이 국민의힘을 뽑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그 목소리가 과장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제대로 분석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언론이고 정치권이고 할 것 없이 모두 한 목소리로 그를 청년정치의 희망으로 내걸었고, 이는 중년 세대의 민주당 정치인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그는 인기의 최고점을 찍으면서 국민의힘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이 시기 나는 입맛이 없고 간혹 눈물이 날 정도로 우울했다. 이준석이 보수 정치인으로서 특정 갈래의 페미니즘에 반대했을 뿐이라면 그렇게 우울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정도 차이는 대화를 통해 조정할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하지만 그는 사실을 왜곡했다. 여성이 고용 또는 직장 내부에서 겪는 성차별, 성범죄에 대해 가지는 공포, 그런 것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으며 일부 여성이 피해망상에 걸렸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여성의 현실을 개선하는 정책은 역차별이며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할당제와 같이 실제로는 극히 일부 분야에서 적용되고 있으며 남성 역시 혜택을 보기도 하는 제도를 마치 구조적 역차별을 부추기는 제도인 양 떠벌렸다.

그는 사실을 정정해주려는 사람들을 윽박지르듯 몰아붙였다. 나는 당시 유독 여성 이슈에서만 목에 핏대를 세우던 그를 보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는 처음부터 우리의 의견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야당의 당대표가 됐다. 그 과정에서 나는 무력감과 우울감을 느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당시 아버지는 이준석을 좋아하시는 편이었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그에 대한 의견을 내게 물어보시곤 했다. 나는 아주 짜증이 났지만, 대화를 통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이준석이 혐오전략을 쓴다는 것을 거의 모르고 계셨다. 메이저 뉴스에서 그 부분을 거의 부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이준석이 차별적인 발언을 할 때마다 정보를 따로 스크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즈음부터 나는 20대 대선이 젊은 여성들에게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옳지 않은 방향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준석은 여성주의를 정치권 주류 의제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래서 나는 난생 처음으로 민주당의 경선 과정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민주당은 현실적으로 수권할 수 있는 정당이었기에 민주당이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아주 중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경선 때 추미애를 지지했다. 추미애는 여성정치인이기도 하지만 민주당 주류 정치인 중 몇 없는 차별금지법에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는 정치인이었고, 환경공약에도 진심인 듯 보였다. 그리고 어쨌든 다른 두 후보보다는 여러 면에서 좋은 정치인으로 보였다. 이낙연과 이재명은 서로 다른 이유에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시권에 있는 후보는 그 둘이었고, 누가 되든 참 별로겠거니 싶었다.

내가 이재명에 대해 조금은 달리 보기 시작한 것은 권인숙 의원이 아주 초반부터 이재명 캠프에 합류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였다.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권인숙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여성 법안과 인권 법안을 추진하고 통과시킨 정치인 중 한 명이다. 권력형 성범죄를 완전하게 해결하지 못해 민주당에 불만이 남아있는 사람들조차 권 의원만큼은 인정할 정도로 독보적인 성과를 내는 정치인이 권인숙 의원이었다. 나는 그 조합이 참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당시 내 머릿속 이재명의 이미지는 어쩌면 조폭세력과도 연루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앞뒤가 다른 포퓰리즘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재명은 당시에도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이었다. 나는 그 사실이 굉장히 신기하고 의아했다. 일단 내 또래의 여자애들 중 이재명을 좋아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본 일이 없었다. 좋아하지 않는 게 뭐야. 엄청나게 싫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대체 누구한테 인기가 있길래 유력 대선 후보인 걸까? 그 사실이 궁금해서 좀 찾아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중년 세대의 블루칼라 종사자나 수도권 자영업자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학교를 그만두고 소년공으로 일해야 할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검정고시와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든지 간에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는 게 국민의힘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득권이 아닌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대변하는 후보라고 생각해서 이재명을 지지한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여성으로서 여성정치인인 추미애를 지지하는 것처럼, 그 사람들도 그런 마음으로 이재명을 지지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어쨌든 국민의힘 정치인보단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썩 마음에 드는 후보는 아니긴 했다. 내 이런 생각을 어디 가서 굳이 얘기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되었다. 어찌 되었든 앞으로 찍을 수도 있는 후보라는 생각에 이후 여성정책에 대한 그의 행보를 자세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메이저 정치권의 여성 이슈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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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는 넘기면 이어진다.

8월부터 10월까지: 응? 생각보다 괜찮은데?

8월부터 10월까지는 두 정당에서 각자 경선이 한창 진행 중인 시점이었다.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조금 늦게 경선을 시작했기 때문에 후보도 조금 늦게 선출되었다. 이재명은 10월에, 윤석열은 11월에 최종 후보로 선출된다.

당시 이재명 경선 캠프에는 권인숙 의원 뿐 아니라 여성이나 인권 법안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던 국회의원의 상당수가 참여하고 있었다. 박주민 의원, 이수진 (비례) 의원, 최혜영 의원 등이 그랬고, 이준석이 할당제로 헛소리를 할 때 드물게 바른 말을 한 젊은 남성 의원이었던 이탄희 의원도 이재명 캠프 소속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이재명은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8월부터 10월까지 여성 이슈에 아주 정석적으로 대응했다.

8월에는 윤석열이 처음으로 반페미니즘적 스탠스를 드러낸 해프닝이 있었다. 그는 페미니즘도 건강한 페미니즘이어야 한다면서, 페미니즘이 건전한 남녀교제를 막고, 저출산의 원인이 되며, 선거나 정권 연장을 위해 악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해프닝은 트위터나 여초 커뮤니티에서 대충 알려져 있지 않나 싶다. 이재명은 의외로 이때 윤석열의 막말에 대응이라는 것을 했는데(?) 그 내용이 굉장히 상식적이었다.

그는 윤석열의 현실인식이 우려스럽다면서 저출산 문제는 (페미니즘으로) 여성의 성평등 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성평등 수준이 뒷받침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성평등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적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 꽤 놀랐다. 말이 안 통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내 생각을 이해시키려면 한참은 이야기해야 하는 우리 아버지를 떠올려 보면 더욱 그랬다.

9월에는 기다리던 성평등 공약 발표가 있었다. 경선용 공약이긴 하지만 이때 발표한 4대 기조(육아휴직 확대, 젠더 폭력 대응 체계 구축, 고용 성평등 강화, 성과 재생산 건강권 보장)는 지금 내놓은 공식 공약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알아보기 쉽도록 비슷한 기조의 공약은 계속 같은 색깔로 마킹할 예정이다.) 공약의 내용도 상당히 구체적이고 고용 성차별, 디지털 성범죄 등 당면한 중요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10월에는 별다른 이슈는 없었지만 경찰의 날에 젠더 폭력이나 아동 학대 대응을 강화하겠다고 얘기했다든지, 첫 청년 일정으로 여성 청년 체육인을 만났다든지 하는 소소한 일들이 있었다.

그에 비해 9월에서 10월까지 윤석열은 점점 안티페미니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우선 그는 군가산제를 부활을 얘기했다. 다들 알겠지만, 군가산제는 이미 위헌 판결을 받은 사안으로, 주택 청약이나 고용 등에 군가산제를 적용할 경우 여성, 그리고 장애 등을 이유로 군대를 가지 못한 남성은 큰 불이익을 받는다. 주택 청약의 경우 아예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물론 남성의 군 복무에 대한 보상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 보상을 여성이나 미필 남성의 생계를 어렵게 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게 군가산제이다.

그런 제도를 부활하겠다고 한 것도 문제지만, 윤석열은 그 제도가 없어진 이유로 여성의 사회 진출을 들었다. 즉, 윤석열이 말하는 바람직한 세상이란 여성이 사회 진출을 하지 않고 전업주부로만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이고, 그게 군의 사기를 증진 시키는 일이라는 소리다. 윤석열보다 나이가 많은 우리 아버지조차 하지 않을 말을 아무 부끄럼 없이 한 셈이다. (실제로 그는 이 발언에 해명한 적이 없다.)

또한 그는 성폭법에 무고 조항을 신설하고 다른 무고죄보다 형량을 강화하겠다는 폭탄을 던졌다. 성범죄는 사실관계를 입증하게 매우 어려운 범죄 중 하나이다. 현행 법 상에서도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실제 피해를 입었음에도 꽃뱀으로 몰리거나 입막음을 당하고 있다. 그런데 이 상황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무고죄라는 것을 신설하고 그 형량을 높게 책정하겠다고 한 것이다. 애초에 성범죄 형량도 최저 수준이고 집행 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말이다. 이 이야기가 어떤 남성에게는 환호할 만한 이야기인지 몰라도, 여성들에게는 실질적인 위협이 된다는 것을 정치인씩이나 돼서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가 이준석처럼 여성의 이야기를 아예 들을 생각이 없다는 것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물론 가장 환장하는 부분은 여성가족부의 악마화이다. 그는 여가부가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여성만을 위하며, 싱글파파같은 남성 약자는 지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무수히 많은 전문가들이 여가부의 상당수의 예산은 가족 예산이며 남성을 포함한 학교 밖 청소년이나, 한부모 가정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해왔는데도 이 레토릭이 또 반복된다. (그리고 나는 사실 왜곡에 환장하는 사람이다.)

아무튼 이런 대조적인 행보 덕에 이재명을 뽑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점점 약하지게 되었다. 그리고 고통의 11월이 시작된다^^


11월: 페미니스트 홧병의 달

11월 초, 윤석열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되었다. 윤석열은 젊은층보다는 노년층의 지지를 받는 후보였다.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는 이유에서 문 정부를 싫어하는 보수 유권자들이 정권교체 하나만을 위해 그를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강성 지지층의 심리는 윤찍문빵 (윤석열을 찍으면 문재인이 감옥간다) 하나로 귀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 비해 2위였던 홍준표의 주요 지지층인 젊은 남성들은 문재인을 싫어하긴 하지만 그보다 페미니즘을 더 싫어하는듯 보였다. 문재인을 싫어하는 것도 결국 페미라고 싫어하는 것이니 말이다. 사실 홍준표 강성 지지층은 꼰대에 무능해 보이는 윤석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상황이었고 경선 중에 두 지지층의 갈등이 심화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당원의 민심에서는 홍준표가 윤석열을 앞지르는 상황이었다. 보통 당원보다는 일반 유권자의 선호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당심이 민심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이재명이 그렇게 당선된 경우였다.) 그런데도 윤석열이 후보가 되었으니, 홍준표 지지자들은 억울한 마음에 국민의힘을 틀니의힘이라며 조롱하는 분위기였다.

이재명 캠프의 젊은 남성 의원과 당직자들은 이 상황을 기회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당에 대해 큰 충성심이 없는 젊은 남자 유권자들을 땡겨 올 기회. 뭐 그랬나 보다. 실망한 놈들이 제일 꼬시기 쉬우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멀쩡하게 입단속하고 있던 이재명이 갑자기 자기 페이스북에 이상한 글을 올렸다. <홍카단이 이재명 후보님께 드리는 편지>라는 디씨인사이드 글.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추라며 민주당의 페미니즘적 행보를 비난하고 여성의원들을 저격하는 내용이었다.

뭐 나는 그런 글을 유권자 참고용으로 읽는 것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다. 흔히 말하듯 "그들도 국민이니까." 그런데 이재명은 그 글을 아무런 부연 설명 없이 "함께 읽어보자"라는 말만 남긴 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젊은 여자들이면 다 공감하겠지만, 이재명은 젊은 여자들에게 이미지가 매우 좋지 않다. 소위 말하는 "개저씨"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 사람이 그런 글을 함께 읽어보자고 올렸으니 그걸 지켜보는 대부분의 젊은 여성 유권자는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너도 쟤네랑 똑같이 생각하는구나? 반페미니즘해서 남자 표 가져오려고 하는구나?

개저씨와 반페미니즘을 외치는 남성 유권자들. 얼마나 직관적인 찰떡궁합인가.

내가 만약 경선부터 계속 지켜보지 않았다면, 나도 이렇게 생각하고 이번 대선을 최악의 대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차마 그런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대체 뭐지? 지금까진 멀쩡했는데 왜 이제 와서? 이런 생각으로 머리를 깨며 동이 틀 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나도 모르게 이재명에게 은근한 기대를 가져왔던 모양이다. 기대가 너무 낮았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멀끔했던 지난 3개월간의 행보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약간의 호감을 적립했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완전히 엇나간 행보를 보인 것이다. 너무 화가 났다.

하지만 나는 이준석열의 연이은 망언을 보며 그들이 언젠가 K-트럼프로 진화할 것이라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재명의 행보를 이해해야만 했다. 다행히 그는 내부에서도 욕을 많이 먹었는지 해명이란 것을 했다. 여러 인터뷰에서 그 글을 동의해서 올린 것이 아니라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고 갈등이 있으니 최소한 들어는 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올린 거라고 말했다. 자신은 명백하게 성차별이 있다고 생각하고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그런데 청년세대에 큰 갈등이 있는 거 같으니 그걸 회피하지 말고 직면해 봐야겠다고 결정했을 뿐이라고 말이다.

내가 이 말을 믿어줘야 할까? 그런 고민을 참 많이 했다. 사실 지금도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이 문제를 피하기보단 어떻게 좀 요리해보려고 고민을 한 건 사실인 것 같다. 그리고 그가 성차별이 존재하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어느 정도 진심이라고 본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가 그 남자애들의 억울함에 조금은 공감하고 그 표를 자기 지지기반으로 만들고 싶어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욕먹을 걸 알면서도 한번 시도해본 거지.

하지만 결과가 그다지 성공적이진 않았는지 이런 행보들은 차차 사라졌다. 다만, 이때부터 메시지가 선회하기 시작했는데, 전통적으로 여성의 이슈라고 생각되는 부분에서까지 이게 남녀 편을 가를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라는 식의 두루뭉술한 화법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이재명이 탐탁지 않은 젊은 여성들은 그가 이런 행보를 보이는 것을 주로 봐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 못마땅함도 이해한다. 나도 실망감이 컸으니까.

나중에 더 이어질 이야기지만, 나는 선거가 박빙에 접어들수록 이런 전략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준석열은 연일 페미니스트를 악마화하며 반페미 전선을 구축하지만, 이재명은 페미니스트를 정상 범주에 포함시키고 이준석열이 갈등을 조장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페미 vs 나머지의 구도를 이준석열 vs 나머지의 구도로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면 좋겠지만, 나는 이번 선거에서만큼은 이준석열의 프레임을 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전략에 동의하게 되었다. 


12월: 갈지자 걷기

12월에도 이재명 캠프의 남초 눈치보기 행보는 이어진다. 펨코에 인증샷 게시하기, CBS 씨리얼과 방송 날짜 잡았다가 지지자 항의 듣고 취소하기가 대표적이라 하겠다. 굳이 설명하고 싶진 않지만, 선거 캠프란 굉장히 다양한 생각을 가진 놈들이 드글드글 모인 곳이고 어른들의 사정이 많은지라 이 모든 행보가 이재명 본인의 의지와 큰 상관없었을 수도 있단 해석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굳이 그걸 다 설명하고 싶진 않다.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여러분이 김남국이라는 이름을 기억해두길 바란다. 그놈은 정신 좀 차려야 한다.)

그래도 이재명은 11월보다는 두 가지 측면에서 나은 행보를 보였다. 첫째는 자신의 행보에 그럴듯한 내러티브를 붙여 포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에게 청년 문제와 남녀 갈등에 대해 물으면 매번 나오는 내러티브가 있다. 청년 세대가 성별을 나눠서 싸우게 된 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저성장 시대의 기회 부족으로 인해 생긴 문제다. 그리고 이 문제의 책임은 기성세대에게 있다. 청년들은 생존 경쟁을 하다 보니 형식적 공정성에 잡착하고 약자를 배려하자는 주장(가령 할당제)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기회의 총량을 늘리는 것이다-대충 이런 주장.

이런 주장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실제로 여성 운동이 우리보다 조금 일찍 시작된 다른 나라의 경우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던 시기였기 때문에 남성의 거부감이 덜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여성과 약자에 대한 극우주의가 팽배한 것도 경제적 불평등이 근본적인 이유라고 진단하는 경우가 많다. 이재명은 이런 정석적인 주장을 들고 와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당사자인 젊은 여성의 입장에선 아무래도 속시원하진 않은 얘기일 수 있다고 본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폭행과 살인, 사이버불링, 불법촬영, 성매매에 관련된 뉴스와 증언들을 접하다 보면 이런 짓을 하는 게 과연 동료 시민이 맞나?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게 정말 순수한 악의가 아니라, 생존 경쟁에 지쳐서 그런 거라고? 그런 의문이 들 법 하다.

하지만 나는 이재명의 내러티브가 정치인으로서 정당한 내러티브라고 평가한다. 그것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 내가 얼마나 공감하는지는 다른 문제지만 어쨌든 정치인이 할 만한 말. 나 이외의 다른 성별과 세대도 어느 정도 아우르면서 약간의 공감대는 형성할 수 있는 말.

나는 이번 선거에선 이 점이 참 중요하다고 본다. 윤석열은 공정과 상식을 외치면서 여가부 폐지와 무고죄 강화를 외친다. 하지만 나는 최소한 그가 외치는 공정과 상식보다 이재명이 외치는 말들이 더 공정과 상식에 가깝다고 본다. 나와 내 친구, 부모님, 동기와 옆집 아저씨가 어떤 것들을 공정과 상식으로 합의할 것인가. 그것을 가르는 대선이라는 점에서 이재명의 대답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 나은 행보는 여성 이슈에 좀 더 선명한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2월에는 N번방 방지법이 실제로 시행되기 시작하면서 이준석열의 사전 검열 망언 퍼레이드가 있었다. (N번방 방지법은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안이기 때문에 선동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행보였다.) 윤석열은 심지어 N번방 방지법으로 고양이나 가족영상이 검열된다는 사실무근의 소리를 쏟아냈다. (하! ㅡㅡ) 이재명은 이 부분에 대해서 N번방 방지법은 사전검열이 아니며 다른 사람이 큰 피해를 보는 부분에는 자유가 어느정도 제재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또한 공약들도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11월에 나온 변형카메라 관리 체계/불법 촬영 단속 인프라 구축을 시작으로 12월엔 딥페이크 소지/구입 처벌피임/임신중지(낙태) 급여화공공산후조리원 확대와 같은 여성 공약을 소확행 공약(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이라고 이재명 캠프는 지금까지 nn개의 공약을 물량공세 중이다. 참고로 탈모 급여화도 그 중 하나다.)으로 내놓았다.

이렇게 12월 한 달 간 이재명은 이리저리 갈지자로 걸으며 표몰이에 나선다. 그러나 다행이도, 1월에 접어들면서 두 캠프의 젠더 문제 관련 입장은 확연히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1월: 젊은 여성인 내가 이재명을 뽑는 이유

고구마의 달이 지나고 이재명은 드디어 정신을 차린듯한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다. 우선 가장 크게는 젠더폭력근절 4대 공약과 여성가족 5대 공약 발표가 있었다.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경선에서 나왔던 4대 기조를 모두 따르고 있으며 꽤나 촘촘하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클릭해서 기사를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나는 이중에서 1인가구 안전/주거 관련 공약이 제일 인상 깊었는데, 나같이 결혼의사가 확실하지 않은 여성에게 너무나 중요한 공약이었기 때문이다. 굉장히 시의적절하고 미래지향적인 공약이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의료나 장례문제 시 가족이 아닌 사람도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게 지정하는 연대관계인 지정제도는 급변하는 사회상을 잘 담아낸 공약이라고 생각했다. 이재명은 이전에도 "정상가족"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이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 이재명은 돌연 취소된 줄 알았던 닷페이스 일정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재명 캠프 실무진은 여성공약을 홍보하기 위해 씨리얼과 닷페이스 두 유튜브 채널에 나가려고 했는데, 반페미니즘 성향이 있는 일부 지지자들의 항의로 씨리얼 일정이 무산되었다. 그러나 닷페이스만큼은 나가겠다고 직접 결정한 것이다. 사실 콘텐츠의 내용만 봤을 때는 씨리얼보다 닷페이스가 훨씬 급진적이었기 때문에 (안티페미들이 말하는 급진이 아니라 좋은 의미다) 다들 놀란 반응이었다.

예상대로 일부 지지자들이 난리법썩이었고 김용민 같은 민주당 개저씨 스피커들도 일정을 추진한 여성의원들을 징계해야한다느니 지랄이 짰다. 국힘 표밭인 펨코놈들은 잘 됐다며 낄낄 댔다. 이들이 왜 이러느냐면, 안티페미 성향의 남자들은 "꼴페미 채널" 닷페이스 출연이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줄거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남자들이 정말로 많이들 안티페미화된 건지, 아니면 단순 우연인지는 몰라도 1월 초까지만 해도 정점을 찍고 윤석열을 앞질렀던 이재명의 지지율이 이 즈음부터 하락을 하면서 아직까지도 윤석열 우세가 지속되고 있다. 그래서 아마 누군가의 머릿속에는 "페미=지지율하락"이 아직도 공식화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난리법썩에도 불구하고 이재명은 어쨌든 닷페이스에 출연했고 (출연과정이 웃긴데, 보통은 그날 일정을 다 공개하는 편인데 닷페이스는 일정에 안 적혀 있고 사후 통보했다. 그만큼 지랄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걸로 한동안 지지자들 사이에서 페미니즘 성향 여성의원들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이재명은 이런 반응에 대해 계속해서 나와 아무리 많이 다른 사람이라도 우리는 들어야 한다, 그들도 국민이다, 라는 논리를 반복하며 지지자들을 어르고 달랬다. 

닷페이스에서 이재명은 위력형 성범죄, 직장 내 성평등, 차별금지법 등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그가 한 대답들은 대체로 조금 모자란듯 무난했다. 대부분 이전에 한 말들의 반복이었고 오히려 이전 발언보다 더 몸을 사리는듯한 대답도 있었다. 

사실 난 그가 한 대답의 내용보다 그가 내린 결정의 여파가 좀 더 인상적이었다. 안티페미니즘 성향이 강했던 이재명 지지자 갤러리는 이 즈음부터 구성원이 조금 바뀌었는지 여성의원이나 여성표에 대한 적대와 멸시 적어지기 시작했다. 민주당 스피커들도 좀 조용해졌고 트위터에서도 이재명에 대한 평가가 "절대 싫어!"에서 "흐린눈"으로 조금 상향으로 되는 것이 느껴졌다.

사실 난 닷페이스 출연 자체가 그렇게 큰 이슈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작은 해프닝으로도 맞는 결정을 내리면 분위기가 조금 달라질 수 있구나, 하는 점에서 정치인의 행보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 같은 기간에 윤석열이 여성가족부 폐지 7글자를 페이스북에 전시한 걸 보고선 더더욱 그랬다.

사실 윤석열의 여성가족부 폐지 쇼는 시기상 이재명의 닷페이스 출연 결정에 대한 대응이었다. 김건희 허위이력 문제와 이재명 "삼프로" 유튜브 흥행 등으로 윤석열에서 이탈해 이재명으로 흐른 2030대 남성표가 닷페이스 출연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자, 그 표를 결집시키겠다고 바로 대응한 것이 여성가족부 폐지 7글자였다. 개편까지는 다들 그러려니해도 폐지는 너무 갑작스럽다보니 왜 폐지를 하는건지, 후속 대처는 어떻게 할건지 여러 질문이 쏟아졌지만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제대로 답하기는커녕 응답하는 사람마다 대답이 다 달랐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런 메시지를 내 건 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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