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에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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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자유’, ‘발행부수’라는 두 신화
우리 언론의 신뢰도가 선진국들 중 꼴찌 수준으로 추락한 것은 두 신화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언론의 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라는 신화이고, 다른 하나는 ‘신문 발행부수의 신화’다.
모든 자유는 자유권의 내재적 한계 때문에 제한될 수밖에 없고, 특히 언론에는 책임성이 강조돼야 한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사주의 자유나 기자의 특권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로 발달해온 것이다. 그런데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쪽으로 언론의 자유가 악용되고 있다. 우리는 독재정권 시절 너무나 언론의 자유를 갈망했기에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신화에 빠져버렸다. ‘남의 인권을 침해할 자유’, ‘가짜뉴스로 명예를 훼손할 자유’는 없는데도, 기득권 언론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언론개혁에 한사코 반대한다.
다른 하나는 신문이 ‘발행부수의 신화’에서 빠져나오는 일이다. 세계 일류 신문은 정체성과 타깃독자가 확실해, 대개 10~20만 부 발행하고 많아야 50만 부 수준이다. 그들은 대신 인터넷에서 수익을 올리는데, 우리 언론은 네이버와 다음 포털에 종속돼 독립을 못 하고 있다. 부수공사(ABC) 제도는 1989년 ABC협회 창립 이래 공정한 광고집행의 기준임을 자임해왔으나 부수 조작을 인증받는 수단이 되고 말았다. 지구에 산소를 공급하는 나무를 잘라 생산한 펄프를 대량수입해 잉크만 묻혀 10분의 1 가격으로 재수출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나?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포털 개혁은 신문의 독립을 도와주는 것이다. 언론개혁 관련 법안은 우리 언론이 스스로는 벗어나지 못하는 두 신화의 미몽에서 깨어나는 ‘알람’ 구실을 해야 한다.
전무한 언론개혁에 동력이 붙은 이유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와 국회는 그동안 언론개혁에 관한 한 입법은 물론이고 주어진 권한조차 행사하지 못했다. 인권변호사로 살아온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에는 관심이 많았으나, 언론에 관해서는 ‘자유주의 언론관’에 경도된 탓인지 최소한의 ‘시장질서’조차 바로잡지 못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자본금 불법 조달로 태어날 수 없었던 MBN마저 재승인을 해줬다. 은 재승인 요건인 방송통신심의에 여러 차례 걸렸고 공정성 심사에서 과락점수를 받았지만, 소송을 제기해 시간을 끄는 방식으로 재승인 제도를 무력화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였던 이효성 씨와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였던 한상혁 씨가 방송통신위원장이 되고서도 고유권한조차 행사하지 못한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그들이 방송통신위원회 관료들에게 포획됐다고 본다. 방송통신위원회 관료 상당수는 보수신문에 종편을 4개나 나눠준 뒤 그걸 살리려고 온갖 특혜를 베푼 ‘종편의 수호자’다. 그들이 정권 바뀌었다고 안면을 몰수할까? 법정제재 여부를 검토했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직원은 차장으로 스카우트되기도 했다. 관료들의 복심과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을 지낸 자들의 대선 출마가 그런 사실을 입증한다.
정권 말기에 겨우 언론개혁에 동력이 붙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부진한 개혁에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인 듯하다. 180석 범여정당을 만들어줬는데도 언론개혁은 지지부진했다. 국회의원이 된 언론인 24명 중 언론개혁 의지를 강하게 보인 여당 의원은 내 모니터링 결과로는 4명뿐이었고, 보수야당 의원들은 숫제 언론개혁을 막는 ‘방탄의원단’이었다. 징벌적 배상을 손해액의 3배 이내로 한다는 정청래 의원안이 지난해 나왔을 때, 11명 발의자 중에 기자‧PD 출신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여당이 초선의원 미디어 교육에 TV조선 앵커를 강사로 초빙한 것은 언론에 관한 당 지도부의 인식을 가늠케 하는 ‘상징’이었다. 그러나 최근 언론계 출신이면서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택한 김의겸 의원, 법조계 출신인 최강욱‧김승원 의원과 박정 의원 등이 언론개혁 관련 법 수정안을 경쟁적으로 내면서 지금은 어느 정도 동력이 확보된 듯하다. 언론개혁 관련 여당내 특위위원장도 박광온‧노웅래 의원이 나름대로 역할을 했으나, 실질적인 성과는 최근 위원장을 맡은 김용민 의원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게 됐다.
둘째, 갈수록 심하게 편파‧왜곡보도를 하는 기성언론이 역설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 언론개혁에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언론개혁에 막무가내로 반대해왔지만 최근 법안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각인하는 큰 사고를 잇달아 쳤다. <조선일보>는 조국 교수와 딸의 삽화를 성매매 위장 절도 사건에 재사용했다가 공분을 샀다. 조국 교수가 손배소송을 미국 법원에 제기할 움직임을 보인 것은 한국의 입법 미비 상황을 부각시켰다. 삽화를 사용한 기자와 데스크, 언론사가 한국에 있는데도, 전재했을 뿐인 조선>조선>조선>를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려는 것은 한국에서는 징벌적 효과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윤석열이 조국 일가를 100여 차례 압수수색하는 등 검찰권을 남용한 행위는 검찰개혁뿐 아니라 언론개혁의 당위성도 돋보이게 했다. 세계 언론사상 전쟁을 빼고 단일 사건에 이렇게 많은 기사를 쏟아낸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마녀사냥을 했지만, 법조기자단은 여전히 반성하는 기미가 없다. 관훈클럽의 <관훈저널>이 기획한 토론회에서 법조기자단의 유력 매체 법조팀장들은 “조국‧추미애 검증보도가 정당했다”라고 강변했다. 그 토론회에서 사회를 본 <중앙일보> 팀장은 가짜 수산업자에게 외제 차량을 제공받고 자녀 학비를 대납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검찰과 언론이 조국 교수의 권력형 비리로 부각했던 사모펀드는 그와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반성하는 데가 전혀 없다. 중견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은 ‘조국 사모펀드 비리’를 보도한 <서울경제> 취재팀에 권력감시 부문 관훈언론상을 수여했다. 신문협회, 기자협회, 언론노조 등은 언론개혁을 자정능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비판이 고조될 때마다 나오는 소리다. 개혁대상은 스스로 참담한 모습을 드러낼 뿐 자정능력이 없음을 자신들이 입증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왜 절실한가?
언론중재위원회가 2009~2018, 10년간 손해배상 청구사건 2,220건을 분석한 <언론판결분석보고서>는 판결 인용액이 너무 적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소송을 제기해도 500만원 이하 배상이 절반 가까이나 돼 언론사가 별로 부담을 갖지 않는다(관련 도표 참조).
또한 청구액 최빈액, 곧 가장 빈번하게 청구한 평균 손해배상액은 7,800만원에 이르지만 판결 인용액은 565만원으로 14분의 1밖에 안 된다(관련 도표 참조). 소송 절차가 까다롭고 실익이 거의 없어 소 제기를 포기하는 피해자도 무수히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입법의 필요성이 매우 크다.
유해언론 징벌, 여론 지지도 높아
허위조작정보 또는 가짜뉴스가 워낙 많이 유통돼 국민들도 그 폐해를 심각하게 느끼기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관한 찬성 여론은 매우 높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찬반 비율은 20년 5월 리서치뷰 조사에서 81 대 11로 찬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21년 2월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찬반비율이 61.8 대 29.4로 찬성이 반대의 2배 이상으로 높게 나타났다. 찬성 비율이 조금 낮아진 것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계속 논의되면서 일부 언론과 언론단체 등이 반대해온 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압도적 여론의 영향인지 일부 언론단체의 반대 강도는 좀 낮아졌고, ‘원론 찬성, 각론 반대 또는 수정’ 등으로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애초 언론노조와 기자협회 등이 발행인 모임인 신문협회에 동조해 이 제도를 악법으로 규탄하고 나선 점은 실망스러웠다. 반대론이 제일 강한 게 징벌적 손해배상제였는데, 언론계 반발이 심하다는 점에서 시행되면 상당한 효과를 거둘 것이라는 역설도 성립한다.
처음에는 법무부가 안을 내놨는데 반대 논리 중에는 ‘언론을 상대로 제조물 책임을 묻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실은 언론이 일반 제조물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언론의 과장‧왜곡보도 때문에 망한 기업이 몇이고 자살한 사람이 몇인가? 노무현 대통령도 그중 한 사람이다. 유해언론이 널려 있는 게 우리 언론 환경이다. 독극물보다 피해가 더 큰 게 유해식품과 유해언론이다. 독극물은 ‘독극물’이라고 써놨는데 유해식품은 건강식품으로 포장하고 있고 유해언론도 건전한 언론으로 포장하고 있다.
왜 경제적 배상을 강제해야 하나?
가짜뉴스(허위조작정보)에 형사소송 말고도 경제적 배상을 강제해야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가짜뉴스가 확증편향을 거쳐 더 많은 독자와 시청자를 모으는 구조로 돼있어 이를 제지하려면 민사소송을 겸해서 경제적 이익을 박탈해야 한다. 징벌적 배상이 절실한 이유는 현행 제도로는 배상액이 너무 적다는 데 있다. 매월 억대 수익을 올리는 극단적인 유튜버나 기성언론에게 수백만원 배상금은 ‘필요경비’ 정도일 뿐이다. 징벌적 배상제가 없는 상황에서는 돈 되는 가짜뉴스의 생산과 전파를 자제할 리 없다.
징벌적 배상제의 핵심은 양형 기준을 높이자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법원의 보수적 판결로 일부 손해만 배상될 뿐 징벌의 의미가 없었다. 따라서 징역 등의 상하한선을 규정해둔 형법처럼 상하한선을 설정해둬야 징벌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민주당 통합안에 따르면 ‘고의‧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따른 피해자는 인정되는 손해액의 3배 이상, 5배 이하 배상을 언론사 등에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더 까다로운 문제는 3~5배를 곱하기 전의 손해액 산정이다. 민주당 통합안은 ‘언론사 매출액의 1만분의 1에서 1천분의 1을 곱한 금액 중 보도에 이르게 된 경위, 언론사 등의 규모, 피해 정도 등을 종합하여 정한다’라고 돼있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조선일보>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이 2,848억 원이었으니 허위‧조작보도 피해자의 손해액은 2,848만~2억 8,480만 원으로 산출된다. 여기에 3~5배를 곱하면 최저 8,544만 원에서 최고 14억 2,400만 원까지 징벌적 배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법원의 보수적 판결 성향을 감안하면, 하한선에 근접해서 배상액을 판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징벌효과가 대단히 위협적인 수준에 이르지는 않을 전망이다.
5배 징벌이 높은 듯하지만 미국에서는 조국 부녀 삽화 게재와 관련해 1억 달러, 곧 1,150억 원 안팎의 손배소가 거론될 정도이고, 실제로 대선조작설을 퍼뜨린 <폭스뉴스> ‘루 돕스 투나잇’ 프로에는 27억 달러, 곧 3조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제기됐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전문가 진술’을 통해 나는 상하한선을 올려 상한선의 경우 10배 정도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징벌적 배상액 산정은 쉽지 않은 문제지만, 법원이 판례로써 ‘언론의 자유’와 ‘언론 피해구제’라는 상충하는 가치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잡아줄 걸 기대하면서 제도를 보완해 나가면 된다. 함부로 소송을 걸면 상대방 비용도 덮어쓰게 되니까 최소한의 견제장치는 있는 셈이다.
징벌적 배상제 민주당 통합안이 밝혀지자 <조선>은 ‘언론규제 점입가경’, <중앙>은 ‘언론 재갈 물리기’, <동아>는 ‘과잉규제 법리 어긋나’ 같은 표현을 쓰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조선>은 박근혜 대통령 시절인 2017년 2월 6일 발간한 <주간조선> 표지기사 ‘아님 말고? 가짜 기사, 피해자만 남긴다’에서 지금과는 정반대 논조를 폈다. 미국 등에서는 ‘악의적 오보로 판명나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적용, 엄청난 금액을 배상해야 한다’라며 ‘명예훼손 또는 악의적 오보에 대한 손해배상 비용은 평균 15억~20억 원에 달한다’라고 썼다. 그 기사는 또 ‘배상액 때문에 언론사가 문 닫는 경우도 있다’라며 ‘한국에는 90만 명이 넘는 언론인이 있다’고 전제한 뒤 ‘가짜 기사를 양산해내는 펜은 펜이 아니라 칼이고 피해자의 인격을 죽이는 살인도구’라고 비판했다.
고의·중과실(악의) 입증책임은 누가?
징벌적 배상제 반대론 중에 ‘비판적 보도를 악의적 보도로 규정해 언론 탄압 수단으로 악용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일부 부작용은 예상되지만 현실에서는 기자와 언론사가 성향에 따라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를 품고 내보내는 기사가 너무 많다. 법에 걸리지 않으려면 ‘악의’를 버리고 공정하게 보도하면 되는데 공정보도를 유도할 다른 수단이 없다. 관건은 누가 ‘악의’를 입증하는 책임을 지느냐 하는 문제인데 상세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언론의 자유가 잘 보장되는 미국은 그 대신 보도에 따른 피해를 구제하려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남용을 막기 위해 공인은 입증 책임을 스스로 지도록 했다.
미국도 원래는 진실 입증 책임이 언론에 있었는데, 1964년에 연방대법원이 ‘설리번 사건’ 판결을 통해 공직자의 경우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언론의 ‘현실적 악의’를 피해자 쪽이 입증하도록 했다. ‘언론 자유의 나라’답게 지금은 공직자뿐 아니라 공인으로 확대했다. 또한 단순한 손해배상이 아닌 징벌적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공인이 아닌 일반인도 ‘현실적 악의’를 입증해야 한다. ‘현실적 악의’란, 보도한 기자나 데스크가 그 내용이 허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거나 진실 여부에 관해 파악하려는 노력을 소홀하게 했다는 걸 뜻한다.
우리 현실에서 사회적 약자인 일반 개인에게는 ‘언론의 악의가 있었다’라는 입증 책임을 지워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일반인의 경우 언론사 쪽이 ‘악의가 없었다’라는 입증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기관이나 재벌기업이 위협효과를 노려 언론에 소송을 남발하는 부작용을 막는 장치도 필요하다. 언론보도를 막기 위한 ‘전략적 봉쇄 소송’은 미국의 경우 법원이 대개 각하 결정을 내린다.
강화해야 마땅한 정정보도
우리 언론의 병폐는 오보를 내고도 구석에 조그맣게 정정하는 등 정정에 대단히 인색하다는 점이다. 사법절차가 더뎌 정정해도 피해가 거의 회복되지 않는다. 이회창 대선후보 아들 병역비리를 허위로 폭로한 김대업 사건이나 홍가혜 씨 허언증 보도에서 보듯이 대법원 판결은 3,4년을 넘기는 사례도 많은 게 우리 사법절차다. 지연된 정정은 정정이 아니라는 차원에서 언론중재위원회와 법원의 절차, 그리고 정정보도를 신속하게 진행하도록 해야 한다.
보도책임자가 정정보도까지 맡는 우리 언론은 눈에 안 띄게 정정보도를 하려고 온갖 수법을 동원하는데, 그래서는 피해구제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미러>는 2004년에 영국군도 이라크군 포로를 학대했다는 사진들을 보도했다가 오보로 판명되자 원래 기사보다 더 크게 1면 톱으로 정정했다. 당시 제목이 ‘죄송합니다...우리가 꾀임에 빠졌습니다(Sorry…We were hoaxed)’였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한 기자가 장기간 기사조작을 해온 사실이 드러나자 표지기사부터 22페이지에 걸쳐 정정기사를 실었다. 같이 취재한 적도 있는 동료기자는 책을 써서 기사조작의 내막을 파헤쳤다. 우리 언론계 풍토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왜곡보도를 바로잡으려는 의지보다는 동업자심리가 더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말하라, 있는 그대로.’ <슈피겔>은 작고한 창업자 아우크스타인의 말로 표지기사 제목을 달았다.
우리 언론의 신뢰도가 선진국들 중 꼴찌 수준으로 추락한 것은 두 신화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언론의 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라는 신화이고, 다른 하나는 ‘신문 발행부수의 신화’다.
모든 자유는 자유권의 내재적 한계 때문에 제한될 수밖에 없고, 특히 언론에는 책임성이 강조돼야 한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사주의 자유나 기자의 특권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로 발달해온 것이다. 그런데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쪽으로 언론의 자유가 악용되고 있다. 우리는 독재정권 시절 너무나 언론의 자유를 갈망했기에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신화에 빠져버렸다. ‘남의 인권을 침해할 자유’, ‘가짜뉴스로 명예를 훼손할 자유’는 없는데도, 기득권 언론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언론개혁에 한사코 반대한다.
다른 하나는 신문이 ‘발행부수의 신화’에서 빠져나오는 일이다. 세계 일류 신문은 정체성과 타깃독자가 확실해, 대개 10~20만 부 발행하고 많아야 50만 부 수준이다. 그들은 대신 인터넷에서 수익을 올리는데, 우리 언론은 네이버와 다음 포털에 종속돼 독립을 못 하고 있다. 부수공사(ABC) 제도는 1989년 ABC협회 창립 이래 공정한 광고집행의 기준임을 자임해왔으나 부수 조작을 인증받는 수단이 되고 말았다. 지구에 산소를 공급하는 나무를 잘라 생산한 펄프를 대량수입해 잉크만 묻혀 10분의 1 가격으로 재수출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나?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포털 개혁은 신문의 독립을 도와주는 것이다. 언론개혁 관련 법안은 우리 언론이 스스로는 벗어나지 못하는 두 신화의 미몽에서 깨어나는 ‘알람’ 구실을 해야 한다.
전무한 언론개혁에 동력이 붙은 이유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와 국회는 그동안 언론개혁에 관한 한 입법은 물론이고 주어진 권한조차 행사하지 못했다. 인권변호사로 살아온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에는 관심이 많았으나, 언론에 관해서는 ‘자유주의 언론관’에 경도된 탓인지 최소한의 ‘시장질서’조차 바로잡지 못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자본금 불법 조달로 태어날 수 없었던 MBN마저 재승인을 해줬다. 은 재승인 요건인 방송통신심의에 여러 차례 걸렸고 공정성 심사에서 과락점수를 받았지만, 소송을 제기해 시간을 끄는 방식으로 재승인 제도를 무력화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였던 이효성 씨와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였던 한상혁 씨가 방송통신위원장이 되고서도 고유권한조차 행사하지 못한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그들이 방송통신위원회 관료들에게 포획됐다고 본다. 방송통신위원회 관료 상당수는 보수신문에 종편을 4개나 나눠준 뒤 그걸 살리려고 온갖 특혜를 베푼 ‘종편의 수호자’다. 그들이 정권 바뀌었다고 안면을 몰수할까? 법정제재 여부를 검토했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직원은 차장으로 스카우트되기도 했다. 관료들의 복심과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을 지낸 자들의 대선 출마가 그런 사실을 입증한다.
정권 말기에 겨우 언론개혁에 동력이 붙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부진한 개혁에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인 듯하다. 180석 범여정당을 만들어줬는데도 언론개혁은 지지부진했다. 국회의원이 된 언론인 24명 중 언론개혁 의지를 강하게 보인 여당 의원은 내 모니터링 결과로는 4명뿐이었고, 보수야당 의원들은 숫제 언론개혁을 막는 ‘방탄의원단’이었다. 징벌적 배상을 손해액의 3배 이내로 한다는 정청래 의원안이 지난해 나왔을 때, 11명 발의자 중에 기자‧PD 출신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여당이 초선의원 미디어 교육에 TV조선 앵커를 강사로 초빙한 것은 언론에 관한 당 지도부의 인식을 가늠케 하는 ‘상징’이었다. 그러나 최근 언론계 출신이면서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택한 김의겸 의원, 법조계 출신인 최강욱‧김승원 의원과 박정 의원 등이 언론개혁 관련 법 수정안을 경쟁적으로 내면서 지금은 어느 정도 동력이 확보된 듯하다. 언론개혁 관련 여당내 특위위원장도 박광온‧노웅래 의원이 나름대로 역할을 했으나, 실질적인 성과는 최근 위원장을 맡은 김용민 의원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게 됐다.
둘째, 갈수록 심하게 편파‧왜곡보도를 하는 기성언론이 역설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 언론개혁에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언론개혁에 막무가내로 반대해왔지만 최근 법안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각인하는 큰 사고를 잇달아 쳤다. <조선일보>는 조국 교수와 딸의 삽화를 성매매 위장 절도 사건에 재사용했다가 공분을 샀다. 조국 교수가 손배소송을 미국 법원에 제기할 움직임을 보인 것은 한국의 입법 미비 상황을 부각시켰다. 삽화를 사용한 기자와 데스크, 언론사가 한국에 있는데도, 전재했을 뿐인 조선>조선>조선>를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려는 것은 한국에서는 징벌적 효과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윤석열이 조국 일가를 100여 차례 압수수색하는 등 검찰권을 남용한 행위는 검찰개혁뿐 아니라 언론개혁의 당위성도 돋보이게 했다. 세계 언론사상 전쟁을 빼고 단일 사건에 이렇게 많은 기사를 쏟아낸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마녀사냥을 했지만, 법조기자단은 여전히 반성하는 기미가 없다. 관훈클럽의 <관훈저널>이 기획한 토론회에서 법조기자단의 유력 매체 법조팀장들은 “조국‧추미애 검증보도가 정당했다”라고 강변했다. 그 토론회에서 사회를 본 <중앙일보> 팀장은 가짜 수산업자에게 외제 차량을 제공받고 자녀 학비를 대납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검찰과 언론이 조국 교수의 권력형 비리로 부각했던 사모펀드는 그와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반성하는 데가 전혀 없다. 중견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은 ‘조국 사모펀드 비리’를 보도한 <서울경제> 취재팀에 권력감시 부문 관훈언론상을 수여했다. 신문협회, 기자협회, 언론노조 등은 언론개혁을 자정능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비판이 고조될 때마다 나오는 소리다. 개혁대상은 스스로 참담한 모습을 드러낼 뿐 자정능력이 없음을 자신들이 입증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왜 절실한가?
언론중재위원회가 2009~2018, 10년간 손해배상 청구사건 2,220건을 분석한 <언론판결분석보고서>는 판결 인용액이 너무 적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소송을 제기해도 500만원 이하 배상이 절반 가까이나 돼 언론사가 별로 부담을 갖지 않는다(관련 도표 참조).
또한 청구액 최빈액, 곧 가장 빈번하게 청구한 평균 손해배상액은 7,800만원에 이르지만 판결 인용액은 565만원으로 14분의 1밖에 안 된다(관련 도표 참조). 소송 절차가 까다롭고 실익이 거의 없어 소 제기를 포기하는 피해자도 무수히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입법의 필요성이 매우 크다.
유해언론 징벌, 여론 지지도 높아
허위조작정보 또는 가짜뉴스가 워낙 많이 유통돼 국민들도 그 폐해를 심각하게 느끼기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관한 찬성 여론은 매우 높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찬반 비율은 20년 5월 리서치뷰 조사에서 81 대 11로 찬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21년 2월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찬반비율이 61.8 대 29.4로 찬성이 반대의 2배 이상으로 높게 나타났다. 찬성 비율이 조금 낮아진 것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계속 논의되면서 일부 언론과 언론단체 등이 반대해온 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압도적 여론의 영향인지 일부 언론단체의 반대 강도는 좀 낮아졌고, ‘원론 찬성, 각론 반대 또는 수정’ 등으로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애초 언론노조와 기자협회 등이 발행인 모임인 신문협회에 동조해 이 제도를 악법으로 규탄하고 나선 점은 실망스러웠다. 반대론이 제일 강한 게 징벌적 손해배상제였는데, 언론계 반발이 심하다는 점에서 시행되면 상당한 효과를 거둘 것이라는 역설도 성립한다.
처음에는 법무부가 안을 내놨는데 반대 논리 중에는 ‘언론을 상대로 제조물 책임을 묻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실은 언론이 일반 제조물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언론의 과장‧왜곡보도 때문에 망한 기업이 몇이고 자살한 사람이 몇인가? 노무현 대통령도 그중 한 사람이다. 유해언론이 널려 있는 게 우리 언론 환경이다. 독극물보다 피해가 더 큰 게 유해식품과 유해언론이다. 독극물은 ‘독극물’이라고 써놨는데 유해식품은 건강식품으로 포장하고 있고 유해언론도 건전한 언론으로 포장하고 있다.
왜 경제적 배상을 강제해야 하나?
가짜뉴스(허위조작정보)에 형사소송 말고도 경제적 배상을 강제해야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가짜뉴스가 확증편향을 거쳐 더 많은 독자와 시청자를 모으는 구조로 돼있어 이를 제지하려면 민사소송을 겸해서 경제적 이익을 박탈해야 한다. 징벌적 배상이 절실한 이유는 현행 제도로는 배상액이 너무 적다는 데 있다. 매월 억대 수익을 올리는 극단적인 유튜버나 기성언론에게 수백만원 배상금은 ‘필요경비’ 정도일 뿐이다. 징벌적 배상제가 없는 상황에서는 돈 되는 가짜뉴스의 생산과 전파를 자제할 리 없다.
징벌적 배상제의 핵심은 양형 기준을 높이자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법원의 보수적 판결로 일부 손해만 배상될 뿐 징벌의 의미가 없었다. 따라서 징역 등의 상하한선을 규정해둔 형법처럼 상하한선을 설정해둬야 징벌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민주당 통합안에 따르면 ‘고의‧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따른 피해자는 인정되는 손해액의 3배 이상, 5배 이하 배상을 언론사 등에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더 까다로운 문제는 3~5배를 곱하기 전의 손해액 산정이다. 민주당 통합안은 ‘언론사 매출액의 1만분의 1에서 1천분의 1을 곱한 금액 중 보도에 이르게 된 경위, 언론사 등의 규모, 피해 정도 등을 종합하여 정한다’라고 돼있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조선일보>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이 2,848억 원이었으니 허위‧조작보도 피해자의 손해액은 2,848만~2억 8,480만 원으로 산출된다. 여기에 3~5배를 곱하면 최저 8,544만 원에서 최고 14억 2,400만 원까지 징벌적 배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법원의 보수적 판결 성향을 감안하면, 하한선에 근접해서 배상액을 판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징벌효과가 대단히 위협적인 수준에 이르지는 않을 전망이다.
5배 징벌이 높은 듯하지만 미국에서는 조국 부녀 삽화 게재와 관련해 1억 달러, 곧 1,150억 원 안팎의 손배소가 거론될 정도이고, 실제로 대선조작설을 퍼뜨린 <폭스뉴스> ‘루 돕스 투나잇’ 프로에는 27억 달러, 곧 3조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제기됐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전문가 진술’을 통해 나는 상하한선을 올려 상한선의 경우 10배 정도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징벌적 배상액 산정은 쉽지 않은 문제지만, 법원이 판례로써 ‘언론의 자유’와 ‘언론 피해구제’라는 상충하는 가치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잡아줄 걸 기대하면서 제도를 보완해 나가면 된다. 함부로 소송을 걸면 상대방 비용도 덮어쓰게 되니까 최소한의 견제장치는 있는 셈이다.
징벌적 배상제 민주당 통합안이 밝혀지자 <조선>은 ‘언론규제 점입가경’, <중앙>은 ‘언론 재갈 물리기’, <동아>는 ‘과잉규제 법리 어긋나’ 같은 표현을 쓰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조선>은 박근혜 대통령 시절인 2017년 2월 6일 발간한 <주간조선> 표지기사 ‘아님 말고? 가짜 기사, 피해자만 남긴다’에서 지금과는 정반대 논조를 폈다. 미국 등에서는 ‘악의적 오보로 판명나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적용, 엄청난 금액을 배상해야 한다’라며 ‘명예훼손 또는 악의적 오보에 대한 손해배상 비용은 평균 15억~20억 원에 달한다’라고 썼다. 그 기사는 또 ‘배상액 때문에 언론사가 문 닫는 경우도 있다’라며 ‘한국에는 90만 명이 넘는 언론인이 있다’고 전제한 뒤 ‘가짜 기사를 양산해내는 펜은 펜이 아니라 칼이고 피해자의 인격을 죽이는 살인도구’라고 비판했다.
고의·중과실(악의) 입증책임은 누가?
징벌적 배상제 반대론 중에 ‘비판적 보도를 악의적 보도로 규정해 언론 탄압 수단으로 악용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일부 부작용은 예상되지만 현실에서는 기자와 언론사가 성향에 따라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를 품고 내보내는 기사가 너무 많다. 법에 걸리지 않으려면 ‘악의’를 버리고 공정하게 보도하면 되는데 공정보도를 유도할 다른 수단이 없다. 관건은 누가 ‘악의’를 입증하는 책임을 지느냐 하는 문제인데 상세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언론의 자유가 잘 보장되는 미국은 그 대신 보도에 따른 피해를 구제하려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남용을 막기 위해 공인은 입증 책임을 스스로 지도록 했다.
미국도 원래는 진실 입증 책임이 언론에 있었는데, 1964년에 연방대법원이 ‘설리번 사건’ 판결을 통해 공직자의 경우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언론의 ‘현실적 악의’를 피해자 쪽이 입증하도록 했다. ‘언론 자유의 나라’답게 지금은 공직자뿐 아니라 공인으로 확대했다. 또한 단순한 손해배상이 아닌 징벌적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공인이 아닌 일반인도 ‘현실적 악의’를 입증해야 한다. ‘현실적 악의’란, 보도한 기자나 데스크가 그 내용이 허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거나 진실 여부에 관해 파악하려는 노력을 소홀하게 했다는 걸 뜻한다.
우리 현실에서 사회적 약자인 일반 개인에게는 ‘언론의 악의가 있었다’라는 입증 책임을 지워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일반인의 경우 언론사 쪽이 ‘악의가 없었다’라는 입증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기관이나 재벌기업이 위협효과를 노려 언론에 소송을 남발하는 부작용을 막는 장치도 필요하다. 언론보도를 막기 위한 ‘전략적 봉쇄 소송’은 미국의 경우 법원이 대개 각하 결정을 내린다.
강화해야 마땅한 정정보도
우리 언론의 병폐는 오보를 내고도 구석에 조그맣게 정정하는 등 정정에 대단히 인색하다는 점이다. 사법절차가 더뎌 정정해도 피해가 거의 회복되지 않는다. 이회창 대선후보 아들 병역비리를 허위로 폭로한 김대업 사건이나 홍가혜 씨 허언증 보도에서 보듯이 대법원 판결은 3,4년을 넘기는 사례도 많은 게 우리 사법절차다. 지연된 정정은 정정이 아니라는 차원에서 언론중재위원회와 법원의 절차, 그리고 정정보도를 신속하게 진행하도록 해야 한다.
보도책임자가 정정보도까지 맡는 우리 언론은 눈에 안 띄게 정정보도를 하려고 온갖 수법을 동원하는데, 그래서는 피해구제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미러>는 2004년에 영국군도 이라크군 포로를 학대했다는 사진들을 보도했다가 오보로 판명되자 원래 기사보다 더 크게 1면 톱으로 정정했다. 당시 제목이 ‘죄송합니다...우리가 꾀임에 빠졌습니다(Sorry…We were hoaxed)’였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한 기자가 장기간 기사조작을 해온 사실이 드러나자 표지기사부터 22페이지에 걸쳐 정정기사를 실었다. 같이 취재한 적도 있는 동료기자는 책을 써서 기사조작의 내막을 파헤쳤다. 우리 언론계 풍토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왜곡보도를 바로잡으려는 의지보다는 동업자심리가 더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말하라, 있는 그대로.’ <슈피겔>은 작고한 창업자 아우크스타인의 말로 표지기사 제목을 달았다.
열람차단 청구권과 기사삭제요구권
열람차단청구권은 언론중재위원회가 기사 열람과 검색을 차단해 피해구제를 한 사례가 전체의 30%에 이를 만큼 이미 일반화해 입법에는 문제가 없을 듯하다. 기사 열람 차단은 긴급구제절차이기 때문에 입법이 강화되면 피해구제 신청이 크게 늘어날 것 같다. 다만 공적 사안에 관련되거나 공인의 경우 기사 열람이 쉽게 차단되면 건전한 공론장 형성에 방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기사 열람 차단은 개인의 사생활 등에 한정하도록 명시하고 공론장 활성화를 해칠 우려가 있는 사안은 반론과 정정보도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기사삭제요구권은 유럽연합 등에서 ‘잊힐 권리’의 하나로 법제화한 것이다. 그러나 ‘잊힐 권리’는 여전히 ‘알 권리’와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 또 기사 삭제는 언론 보도의 기록성마저 영구히 사라진다는 점에서 좀 더 신중하게 행사돼야 한다. 미국이 비밀문서에 관해 해제 연한을 두는 것처럼, 오보나 혐오 보도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삭제하지 말고 열람만 차단하다가 일정기간이 지나면 해제하는 절충방안도 가능하다. 유럽연합은 개인정보 삭제를 요구할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필요가 있거나, 유럽연합 회원국 법률상 정보 처리 필요성이 인정되거나, 공익적 사유가 있는 경우 등에는 삭제요구권을 제한한다.
‘쓰레기 기사 투척장’ 포털이 언론개혁 핵심
제일 시급하고 중요한 언론개혁 과제는 너무 정파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로 가득한 포털을 개혁하는 일이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에 따르면 포털을 통한 뉴스 소비는 73%로 조사대상 40개국 중 1위인데 언론사 홈피 직접 방문 비율은 4%로 꼴찌다. 뉴스신뢰도는 5년째 꼴찌인데 포털 탓이 크다. 심지어 창피해서 신문에 못 싣는 기사도 포털에는 메인에 버젓이 걸어놓는다. 포털은 ‘쓰레기 기사 투척장’이요, ‘공멸하는 언론의 무덤’이 되고 있다. 한국 언론은 가두리 양식장의 물고기나 외양간의 가축 같은 신세다. 전재료 받는 데 익숙해져 야생성을 잃어버렸다. 포털과 언론의 잘못된 만남이 우리 언론의 병폐를 중증질환으로 만들어버렸다.
포털의 뉴스 추천이 왜 문제인가 하면 뉴스 추천의 보수 편향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MBC ‘스트레이트’에 따르면 네이버는 보수언론이 48%를 차지하고, 진보언론은 3.6%밖에 안 된다. 안 그래도 보수 대 진보의 언론지형이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는데 포털이 뉴스시장을 지배하면서 ‘가파른 절벽’이 됐다. <한겨레>와 <경향>도 많이 우경화했지만 그래도 선정적인 뉴스 생산은 자제하는데, 보수언론은 끊임없이 선정적인 기사를 남발한다.
허섭쓰레기 같은 기사를 베껴 쓰는 ‘어뷰징팀’을 두는가 하면, 조선일보사는 아예 <조선NS>라는 온라인 전문 자회사를 설립해 선정적인 기사를 많이 올리기로 유명한 자들을 대거 스카우트했다. 그들 중에는 저널리즘의 기초도 제대로 교육받지 않고 클릭수에 일희일비하는 계약직이 많다. 기사 제목부터 ‘충격’ ‘경악’ ‘헉’ ‘ㅋㅋ’까지 동원해 호객행위를 한다. 지금 포털의 알고리즘은 많이 클릭되는 기사가 좋은 기사를 밀어내는, 악화가 양화를 쫓아내는 무기가 되고 있다.
얼마 전 포털 알고리즘 공청회에서 네이버는 “알고리즘이 아닌 언론사가 추천하는 구독 중심으로 뉴스 소비가 이뤄지고 있고, 30% 정도만 보조수단으로 마이뉴스라는 알고리즘 추천뉴스를 이용한다”라고 변명했다. 기계가 알고리즘으로 추천했기에 문제가 없다는 말은, ‘자동차가 교통사고 냈으니 운전자는 책임 없다’라는 말과 같다. 설사 인공지능차라 하더라도 사고 나면 누구 책임인가? 운전은 안 해도 타고 가던 차주인이나 보험회사, 그리고 제조회사에 책임이 돌아간다. 언론사가 추천하는 뉴스도 마찬가지다. 보수 성향 기사가 주로 포털에 뜨는 이유는 디지털 인프라가 좋은 보수언론이 선정적인 기사를 양산해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포털이 큰 문제가 안 되는 이유는 대개 검색기능만 있고, 인공지능에 관해서도 편향성 등을 엄격하게 감시하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 지침에는 투명성과 개방성을 확보해야 하고, 기업이 자신의 인공지능 기능이 공정하다거나 편향이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과장하면 안 되며, 문제가 되면 책임도 져야 한다고 돼있다. 그런데 국내 언론은 투명하지도 개방하지도 않으면서, 편향성이 없다고 계속 말하고 책임도 안 지는 상황이다.
여론 독과점 못 막으면 민주주의도 없다
여론집중도 조사가 중요한 이유는 여론 독과점 상태에서는 민주주의도 무늬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선거에서 후보자를 선택할 때 어떤 경로로 정보를 얻느냐는 질문에 43%가 포털이고 3.9%만이 신문이라고 답했다. 포털이 정파적인 신문 콘텐츠를, 그것도 편향적으로 퍼 나르고 있는 것이다. 요즘 ‘단독’임을 내세워 눈길을 끄는 기사는 대개 정치인이나 아주 정파적인 논객들의 페이스북 등을 열심히 들여다보다가 베껴 쓰는 것들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과잉 대변되면서 이념 대립은 증오의 내전 단계로 들어선 듯하다.
우리 사회가 책임져야 할 산재사고 희생자인 이선호 씨 관련 기사는 드물고 한강변 의대생 사망사고에만 온통 기사가 쏟아진 것은 선정성 자체가 상품이기 때문이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은 <중앙>과 <동아> 기자들의 노고로 세상에 알려졌는데, 그런 신문들이 이제는 포털에 선정적이고 정파적인 기사를 내보내느라 바쁘다.
<르몽드>의 콜롱바니 회장은 “언론에 두 주적이 있는데 하나는 돈, 하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재정이 중요한 건 당연하고, 시간은 인터넷과 포털을 중심으로 속보성이 중요해지면서 진지한 언론이 밀리고 있다는 시각이다. 한국에서는 포털이 진지한 언론의 적이 되고 있다. 진지한 언론은 건전한 공론장을 조성하고 숙의민주주의를 꽃피우는 조건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네이버 이해진, 다음 김범수 의장은 검색기능만 남기는 것을 포함해 스스로 포털 문제에 결단을 내려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
이대로 간다면 정부는 포털을 시장지배력을 가진 언론이라는 지위를 주되, 객관이나 중립 의무처럼 언론에 요구되는 기준도 충족하게 하고 법규를 위반했을 때는 처벌이나 손해배상을 물려야 한다. 포털의 선택지가 네이버와 다음 둘 밖에 없는 데다 그것마저 보수편향이라서 여론시장에서 선택의 여지는 아주 좁다.
여론집중도 조사를 이용해서 포털의 독과점을 규제하는 방법도 있다. 종편을 설립해주는 신방 겸영 미디어법을 통과시킬 때 여론시장 독과점 문제가 강력하게 제기됐는데 포털은 지금 더 심각한 독과점 상태를 누리고 있다. 일반제조업도 독과점 규제를 하는데 공익성 강한 언론을 왜 안 하나? 불량식품을 유통하면 제조사뿐 아니라 유통업체도 처벌하는데, 일반 언론뿐 아니라 포털도 규제하거나 처벌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인리히 뵐이 말한 ‘범죄학의 과제’
한국의 언론권력은 통제받지 않는 절대권력으로 영원히 남으려 한다. 노벨상을 받은 하인리히 뵐은 독일에서 가장 선정적이었던 신문 <빌트>를 겨냥해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라는 소설을 썼다. 소설에서 블룸은 언론에 의해 창녀로 몰려 사회적으로 매장되자 기자를 살해하고 자수한다. 뵐은 ‘작가의 말’을 이렇게 남겼다.
“아무리 막강한 절대권력도 그들만큼 항상 마구 휘두르지는 않는다. (…) 헤드라인의 폭력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 그것을 한 번쯤 연구해보는 것은 범죄학의 과제일 것이다.”
글·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조선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한겨레> 창간에 참여했다. 런던대에서 ‘미디어와 경제위기’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을 거쳐 <한겨레>, <경향신문> 시민편집인과 KBS 경영평가위원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 『중립에 기어를 넣고는 달릴 수 없다』(2017) 등이 있다.
출처 :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조선일보>조선>조선>조선>
기사삭제요구권은 유럽연합 등에서 ‘잊힐 권리’의 하나로 법제화한 것이다. 그러나 ‘잊힐 권리’는 여전히 ‘알 권리’와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 또 기사 삭제는 언론 보도의 기록성마저 영구히 사라진다는 점에서 좀 더 신중하게 행사돼야 한다. 미국이 비밀문서에 관해 해제 연한을 두는 것처럼, 오보나 혐오 보도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삭제하지 말고 열람만 차단하다가 일정기간이 지나면 해제하는 절충방안도 가능하다. 유럽연합은 개인정보 삭제를 요구할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필요가 있거나, 유럽연합 회원국 법률상 정보 처리 필요성이 인정되거나, 공익적 사유가 있는 경우 등에는 삭제요구권을 제한한다.
‘쓰레기 기사 투척장’ 포털이 언론개혁 핵심
제일 시급하고 중요한 언론개혁 과제는 너무 정파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로 가득한 포털을 개혁하는 일이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에 따르면 포털을 통한 뉴스 소비는 73%로 조사대상 40개국 중 1위인데 언론사 홈피 직접 방문 비율은 4%로 꼴찌다. 뉴스신뢰도는 5년째 꼴찌인데 포털 탓이 크다. 심지어 창피해서 신문에 못 싣는 기사도 포털에는 메인에 버젓이 걸어놓는다. 포털은 ‘쓰레기 기사 투척장’이요, ‘공멸하는 언론의 무덤’이 되고 있다. 한국 언론은 가두리 양식장의 물고기나 외양간의 가축 같은 신세다. 전재료 받는 데 익숙해져 야생성을 잃어버렸다. 포털과 언론의 잘못된 만남이 우리 언론의 병폐를 중증질환으로 만들어버렸다.
포털의 뉴스 추천이 왜 문제인가 하면 뉴스 추천의 보수 편향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MBC ‘스트레이트’에 따르면 네이버는 보수언론이 48%를 차지하고, 진보언론은 3.6%밖에 안 된다. 안 그래도 보수 대 진보의 언론지형이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는데 포털이 뉴스시장을 지배하면서 ‘가파른 절벽’이 됐다. <한겨레>와 <경향>도 많이 우경화했지만 그래도 선정적인 뉴스 생산은 자제하는데, 보수언론은 끊임없이 선정적인 기사를 남발한다.
허섭쓰레기 같은 기사를 베껴 쓰는 ‘어뷰징팀’을 두는가 하면, 조선일보사는 아예 <조선NS>라는 온라인 전문 자회사를 설립해 선정적인 기사를 많이 올리기로 유명한 자들을 대거 스카우트했다. 그들 중에는 저널리즘의 기초도 제대로 교육받지 않고 클릭수에 일희일비하는 계약직이 많다. 기사 제목부터 ‘충격’ ‘경악’ ‘헉’ ‘ㅋㅋ’까지 동원해 호객행위를 한다. 지금 포털의 알고리즘은 많이 클릭되는 기사가 좋은 기사를 밀어내는, 악화가 양화를 쫓아내는 무기가 되고 있다.
얼마 전 포털 알고리즘 공청회에서 네이버는 “알고리즘이 아닌 언론사가 추천하는 구독 중심으로 뉴스 소비가 이뤄지고 있고, 30% 정도만 보조수단으로 마이뉴스라는 알고리즘 추천뉴스를 이용한다”라고 변명했다. 기계가 알고리즘으로 추천했기에 문제가 없다는 말은, ‘자동차가 교통사고 냈으니 운전자는 책임 없다’라는 말과 같다. 설사 인공지능차라 하더라도 사고 나면 누구 책임인가? 운전은 안 해도 타고 가던 차주인이나 보험회사, 그리고 제조회사에 책임이 돌아간다. 언론사가 추천하는 뉴스도 마찬가지다. 보수 성향 기사가 주로 포털에 뜨는 이유는 디지털 인프라가 좋은 보수언론이 선정적인 기사를 양산해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포털이 큰 문제가 안 되는 이유는 대개 검색기능만 있고, 인공지능에 관해서도 편향성 등을 엄격하게 감시하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 지침에는 투명성과 개방성을 확보해야 하고, 기업이 자신의 인공지능 기능이 공정하다거나 편향이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과장하면 안 되며, 문제가 되면 책임도 져야 한다고 돼있다. 그런데 국내 언론은 투명하지도 개방하지도 않으면서, 편향성이 없다고 계속 말하고 책임도 안 지는 상황이다.
여론 독과점 못 막으면 민주주의도 없다
여론집중도 조사가 중요한 이유는 여론 독과점 상태에서는 민주주의도 무늬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선거에서 후보자를 선택할 때 어떤 경로로 정보를 얻느냐는 질문에 43%가 포털이고 3.9%만이 신문이라고 답했다. 포털이 정파적인 신문 콘텐츠를, 그것도 편향적으로 퍼 나르고 있는 것이다. 요즘 ‘단독’임을 내세워 눈길을 끄는 기사는 대개 정치인이나 아주 정파적인 논객들의 페이스북 등을 열심히 들여다보다가 베껴 쓰는 것들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과잉 대변되면서 이념 대립은 증오의 내전 단계로 들어선 듯하다.
우리 사회가 책임져야 할 산재사고 희생자인 이선호 씨 관련 기사는 드물고 한강변 의대생 사망사고에만 온통 기사가 쏟아진 것은 선정성 자체가 상품이기 때문이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은 <중앙>과 <동아> 기자들의 노고로 세상에 알려졌는데, 그런 신문들이 이제는 포털에 선정적이고 정파적인 기사를 내보내느라 바쁘다.
<르몽드>의 콜롱바니 회장은 “언론에 두 주적이 있는데 하나는 돈, 하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재정이 중요한 건 당연하고, 시간은 인터넷과 포털을 중심으로 속보성이 중요해지면서 진지한 언론이 밀리고 있다는 시각이다. 한국에서는 포털이 진지한 언론의 적이 되고 있다. 진지한 언론은 건전한 공론장을 조성하고 숙의민주주의를 꽃피우는 조건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네이버 이해진, 다음 김범수 의장은 검색기능만 남기는 것을 포함해 스스로 포털 문제에 결단을 내려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
이대로 간다면 정부는 포털을 시장지배력을 가진 언론이라는 지위를 주되, 객관이나 중립 의무처럼 언론에 요구되는 기준도 충족하게 하고 법규를 위반했을 때는 처벌이나 손해배상을 물려야 한다. 포털의 선택지가 네이버와 다음 둘 밖에 없는 데다 그것마저 보수편향이라서 여론시장에서 선택의 여지는 아주 좁다.
여론집중도 조사를 이용해서 포털의 독과점을 규제하는 방법도 있다. 종편을 설립해주는 신방 겸영 미디어법을 통과시킬 때 여론시장 독과점 문제가 강력하게 제기됐는데 포털은 지금 더 심각한 독과점 상태를 누리고 있다. 일반제조업도 독과점 규제를 하는데 공익성 강한 언론을 왜 안 하나? 불량식품을 유통하면 제조사뿐 아니라 유통업체도 처벌하는데, 일반 언론뿐 아니라 포털도 규제하거나 처벌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인리히 뵐이 말한 ‘범죄학의 과제’
한국의 언론권력은 통제받지 않는 절대권력으로 영원히 남으려 한다. 노벨상을 받은 하인리히 뵐은 독일에서 가장 선정적이었던 신문 <빌트>를 겨냥해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라는 소설을 썼다. 소설에서 블룸은 언론에 의해 창녀로 몰려 사회적으로 매장되자 기자를 살해하고 자수한다. 뵐은 ‘작가의 말’을 이렇게 남겼다.
“아무리 막강한 절대권력도 그들만큼 항상 마구 휘두르지는 않는다. (…) 헤드라인의 폭력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 그것을 한 번쯤 연구해보는 것은 범죄학의 과제일 것이다.”
글·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조선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한겨레> 창간에 참여했다. 런던대에서 ‘미디어와 경제위기’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을 거쳐 <한겨레>, <경향신문> 시민편집인과 KBS 경영평가위원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 『중립에 기어를 넣고는 달릴 수 없다』(2017) 등이 있다.
출처 :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조선일보>조선>조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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