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의병, 목적은 고려독립' 홍범도 장군 100년 만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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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복절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이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영웅 여천 홍범도 장군(1868~1943)을 최고의 예우로 직접 맞이했다. 홍 장군은 1943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순국한지 78년 만에 고국의 품에 안겼다.
문 대통령은 15일 저녁 성남 서울공항에서 거행된 유해 봉환식에서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참석했다. 홍 장군의 유해를 태운 특별수송기는 봉환식 약 1시간 전인 오후 7시30분쯤 공군 전투기 6대의 엄호 비행을 받으며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그가 1921년 연해주로 이주한 지 100년 만에 고국 땅을 밟는 장엄한 모습이 펼쳐졌다.
문 대통령 부부는 김영관 애국지사와 함께 맨 앞줄에 섰으며, 뒤로는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해 여천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우원식 이사장, 배우 조진웅 씨 등 특사단이 도열했다. 이들 참석자는 모두 '장군의 귀환'이라는 문구가 적힌 마스크를 착용했다
홍 장군의 유해가 특별수송기에서 내려올 때는 스코틀랜드의 민요 '올드 랭 사인'이 울려 퍼졌다. 올드 랭 사인은 1896년 11월 독립문 정초식에서 배재학당 학생들이 합창하기 시작하면서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국가처럼 불리던 노래로 1943년 타국에서 광복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홍 장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 준비했다.
문 대통령은 홍 장군의 유해가 도착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어 문 대통령과 김 여사, 김 지사가 차례대로 분향한 뒤 참석자 일동이 약 1분간 묵념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정부는 홍범도 장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 내일부터 이틀간 온라인 분향소 등을 운영하며 국민 추모기간을 거쳐 오는 18일 대전현충원에 홍 장군의 유해를 안장할 예정이다.
▲ 홍범도 장군 유해가 16일 대전현충원 현충관 임시안치소에 안치된 가운데, 정부는 오는 17일까지 현충탑 앞 국민분향소와 온라인 분향소를 마련, 추모기간을 거친 뒤, 18일 안장식을 할 예정. 오마이뉴스 |
보도에 따르면 이번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은 지난 2019년 4월 문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국빈 방문 당시 합의했던 유해 봉환 약속이 약 2년 만에 결실을 맺은 것이다. 평양 출신인 홍 장군의 유해 송환은 북측의 반대로 어렵사리 성사됐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와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은 별개의 문제"라며 유해봉환 추진을 지시할 정도로 의지가 강했다.
문 대통령은 "독립유공자 유해봉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후손의 의사"라고 강조했다. 홍범도 장군의 외손녀 김알라씨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외할아버지를 한국에 모시는 게 마지막 꿈"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게 문 대통령의 지론이었다고 전해진다.
이석현 전 국회부의장은 16일 SNS를 통해 "홍범도 장군은 해방후 남북이 외면했다. 北은 김일성의 권위가 실추될까봐 南은 소련에 연관있다고 배척"이라며 "독립영웅은 외롭지만 위대하다. 독립운동 안했어도 일제때 묵묵히 농사짓고 산 민초들도 민족의 뿌리로서 훌륭하다. 나쁜놈은 조상이 친일했는데 독립운동 했다는 사기꾼!"이라고 꼬집었다.
'백두산 포수' 출신의 홍범도 장군은 한평생 조국 해방을 위해 무장투쟁을 펼친 항일독립운동가다. 홍 장군은 1920년 최진동 장군과 함께 독립군을 이끌고 봉오동 골짜기에서 일본 월강추격대와 독립투쟁 최초의 전면전을 벌여 무장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승리를 거뒀다. 같은 해 10월 보복전에 나선 일본군 대부대를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와 합세해 무찌른 청산리 전투의 주역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저녁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식이 끝난 후, 특사단의 황기철 국가보훈처장, 우원식 홍범도기념사업회 이사장, 국민대표 조진웅 배우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대통령은 “우리에게 매우 의미있는 귀환”이라면서,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사회가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떠나보내서 섭섭해하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우원식 이사장은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이 지도자를 보내드리게 되어 아주 섭섭해한다”면서, “코로나19로 인한 인원 제한으로, 유해 수습과 추모식에 들어오지 못하고 외곽에서 지켜보는 분들도 많았다”고 답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고려인들로부터 워낙 존경을 받으셨기 때문에 그분들이 섭섭해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아쉬움을 달래고 지속적으로 추모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묘역을 공원화 하는 방안 등 후속 작업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홍범도기념사업회 홍보대사로 활동할 예정인 조진웅 배우에게 “국민들 중에는 홍범도 장군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는 분들도 간혹 있으니 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섰던 그분의 생애와 고귀한 뜻을 적극적으로 알리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또 유해 수습 과정에 대해 물었고,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은 “전 과정이 순조로웠으며, 유해를 수습해보니 장군의 키가 육척장신이 넘어 보였다”면서, “이번 유해 봉환은 문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긴밀하게 협의함으로써 가능했던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대한민국 방공식별구역(KADIZ)에 들어서자 6대의 공군전투기의 엄호 비행을 받았는데, ‘장군의 귀환을 이렇게 맞아주는 게 바로 국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청산리대첩 지휘관 홍범도 장군의 러시아 입국 당시 총 12개 항목을 기재한 조사표가 눈에 띈다. '직업은 의병이고 목적과 희망은 고려 독립'이라고 적혀 있어 뭉클하다.
다음은 한인섭 서울대 교수가 공유한 페친 김정호 씨 게시글이다.
교육: 국문
직업: 의병
사회상 지위: 농사
어느 정당( )은 단체에 속하였소?: 없소
어느 노동조합에 속하였소?: 없소
(방문) 목적과 희망: 고려 독립
어느 외국말을 아시오?: 없소
이전에 로시아에서 오래 동안 머무셨는지요?: 1905년에 와서 1921년까지
이전 입국 기간을 고려할 때 자유시 참변(1921년 6월 28일)으로 독립군이 와해된 이후 다시 러시아에 입국하면서 작정한 신고서로 보임.
이 시기에는 독립군이 강제로 볼셰비키 혁명군에 편입된 상태였는데 입국신고서에는 자신을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의병이며 '고려' 독립을 위해서 러시아에 들어가려 한다고 명시하고 있음.
홍범도 장군은 러시아 입국 후 1927년 볼셰비키당에 입당해서 훗날을 도모하려 했지만 1937년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다른 한인들과 함께 지금의 카자흐스탄 키질로르다(Қызылорда)로 가야만 했음. 그곳에서 집단 농장 운영에 관계하다가 말년에는 현지 고려극장 관리인으로 일함.
1943년에 사망(향년 76세)
평생 조국의 독립을 열망하였고 살아생전에 조국의 땅을 다시 밟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
▲KBS 보도 화면 캡처 |
▲서울의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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