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박사, 조민 장학금 ‘뇌물죄 증거’ 윤석열씨와 조희연교육감 ‘채용 비리’ 최재형씨 내로남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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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구는 돈다.”
갈릴레이가 1616년 교황청 추기경위원회에서 지동설 포기 선서를 하고 돌아서며 한 것으로 알려진 이 독백은 자체로 ‘근대 선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실 또는 진리는 경전에 담긴 ‘신의 뜻’이나 종교 재판관들의 ‘신앙’에 의해 판정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증거’들을 축적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것이라는 믿음은 근대를 만든 정신이었습니다. 물론 대다수 사람이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갈릴레이의 말을 ‘진실’로 인정하기까지에는 이 뒤로도 7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으로부터 시작하면 한 세기 반의 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당시 갈릴레이를 재판한 추기경위원회의 위원들은 자기들이 정당하다고 확신했고, 절대 다수 사람도 이 판결 결과를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이 집단적 신념은 구시대의 삽화로 남았을 뿐입니다.
‘객관적 진실’은 권력자들의 의지나 대다수 사람의 신념과는 무관하며, 인간의 이성으로 ‘진실’들을 찾아내고 축적하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증거와 과학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증거를 날조하거나 반대 증거를 일부러 묵살하는 행위는 과학과 이성에 대한 반역이자 역사에 대한 범죄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권력은 ‘증거 조작’이나 ‘반대 증거 배척’의 유혹을 잘 견디지 못했습니다. 이성의 시대에 증거를 장악하는 것은, ‘신권의 위임자’를 자처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갖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이성적’이라는 평판을 얻었던 독일인들이 나치즘에 빠져든 이유가 그들이 갑자기 ‘광기’에 휩싸였기 때문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증거의 파편들’, 또는 ‘조작된 증거들’을 이성적으로 판단한 결과였다고 보아야 할 겁니다.
사람들이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할 정도의 냉정함을 열정적으로 과시했던 파시즘을 겪은 뒤에야, 인류 지성은 증거-지식-진실-권력의 상관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의 일부 포스트모더니스트는 ‘진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이라고 믿게끔 만드는 서사(敍事)’가 있을 뿐이라고까지 말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에는 ‘권력의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는 말을 진실 탐구를 포기하라는 권유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괴벨스형’으로 정착한 듯합니다.
조국씨 딸이 받은 장학금을 ‘뇌물죄의 증거’로 삼았던 윤석열씨는, 자기가 받았던 ‘접대’와 자기 부인이 기업들로부터 받은 ‘협찬금’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에게 ‘채용 비리’ 혐의를 씌웠던 최재형씨는, 감사원 퇴직자를 불법 채용한 자기 행위에 대해서는 모른 척합니다.
핵심 증거가 인멸된 상태에서 채널A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던 법원은, 오락가락하는 드루킹 일당의 증언 중 일부을 ‘사실’로 인정하여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윤석열씨도, 최재형씨도, 김경수 재판관들도 모두 ‘법조 엘리트’들이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합니다.
한명숙, 정경심, 김경수 등을 유죄로 판단한 ‘증거들’과 윤석열, 최재형, 한동훈 등을 향하는 ‘증거’들 사이에서 진실의 자리는 어디쯤일까요?
자기들이 주장하면 무엇이든 진실이 된다고 믿는 언론매체들이 지배하는 시대에, ‘진실’이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갈릴레이에 대한 종교재판이 열린지 40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 ‘종교재판의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 사회 최고 엘리트들은 “우리가 진실이라고 하면 진실이니 그대로 받아들여라”고 주문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증거들’을 취사선택하는 방식과 그들의 판단에 작용하는 ‘사적 이익에 대한 욕망’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될 겁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이라고 믿게 만들려는 권력의 의지’를 이해해야, 진짜 ‘진실’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전우용 박사 페이스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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