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에 참담한 6800여명 서울대동문들 “두고 볼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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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인 “이승만 독재 정당화했던 것도 ‘자유민주주의 가면’...그 유령 다시 떠돌아”
“저희 서울대인들은 지금 매우 부끄럽습니다.”
“우리 사회 공동체의 내일을 결정하는 대통령 선거의 유력 후보(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우리 동문의 자랑과 긍지가 아니라, 수치와 불명예가 되고 있는 현실에 참담합니다.”
“그의 거듭되는 망언과 실언은 실수나 부주의가 아니라, 적나라한 자기 실체의 고백에 다름 아니기에, 우리는 그를 도저히 우리 사회의 지도자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상식과 양식을 무례한 구둣발로 짓밟으려는 이가 한국호를 이끄는 대재앙을 두고 볼 수 없어 나섭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둔 2일 6800여 명의 서울대 동문들이 우려와 탄식, 사죄의 목소리를 모았다. 유세 현장에서 계속되는 서울대 동문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난폭한 언사와 보수언론도 우려하는 윤 후보의 검찰권력 강화 공약, 대립과 분열을 부추기고 동북아 평화를 깨뜨릴 수 있는 윤 후보의 선제타격 발언 및 사드 추가 배치 공약 때문이다.
“끔직한 재난 두고 볼 수 없어”
우려, 사죄 마음으로 모인 서울대 동문들
‘부끄러운 서울대 1만인 선언모임’은 이날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부끄러운 서울대 1만인 선언모임 - 사죄하는 심정으로 검찰독재를 막아내겠습니다’ 기자회견을 열었다.
1만인 선언모임은 “학교 강의실에서, 암울했던 시절에는 거리에서 배우고 실천하려 했던 자유와 정의 진리의 정신으로 돌아가 우리 스스로 반성과 성찰부터 하고자 하며, 한국사회의 온갖 적폐를 낳은 서울대 동문들의 타락과 부패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심정으로 코로나보다 더 끔찍한 재난을 두고 볼 수 없어 나섰다”라며 이날 회견 취지를 밝혔다.
이어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과 사드 추가배치 등 한반도에 참화를 불러올 위험한 주장을 펼치는 대선후보에게 우리 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저당 잡힐 수 없고, 주 120시간 노동과 최저임금제 폐지 그리고 양극화와 약자에 대한 차별을 당연시하며 남녀·세대·지역 간 갈등·대립을 부추기는 혐오·반목의 정치를 용납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또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은 찾아볼 수 없는 이, 대한민국의 미래 이전에 자기 자신의 장래조차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이로 하여금 청와대를 굿당으로 만들게 할 수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1만인 선언모임이 윤석열 후보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회견에서 지적한 것은 모두 윤 후보의 발언과 공약 등에서 비롯된 논란의 내용들이다.
주최 측에 따르면, 현재까지 이 같은 선언에 동참한 서울대 동문은 6828명이다. 이 선언에는 70·80·90 학번이 주를 이루었고, 1951년 한국전쟁 포화 속에서 입학한 구순의 졸업생부터 아직 성년이 안 된 1학년 재학생인 2022학번까지 모든 세대가 동참했다.
회견에는 서울대 미학과 72학번 황지우 시인, 수의과 77학번 우희종 서울대 교수, 간호학과 79학번 강선희 전 간호사, 국사학과 81학번 전우용 사학자, 물리학과 90학번 이종필 건국대 교수 등이 참석해 서명에 동참한 서울대 동문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유세에서 거친 언사 쏟아내는 윤석열 후보
황 시인 “자유민주주의 가면 쓴 유령, 떠돌아”
특수부 검사 출신 윤석열 국민의힘 최근 대선후보는 유세에서 거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는 자신이 자유민주주의와 헌법을 수호하는 사람이라고 자처하며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심판하고 끌어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는 1일 유세에서도 현 정부와 민주당을 ‘사기 집단’으로 치부하며 “이 무도한 정권을 끌어내리겠다”라고 했다.
한국예술종합대학교 5대 총장을 지내고 현재는 고향에서 지내고 있는 황지우 시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요즘 잠이 잘 오지 않는다”라며 “어떤 유령이 다시 대한민국 도처를 떠돌고 있지 않나 싶어서”라고 말했다.
황 시인은 “어떤 유령. 혹자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의 가면을 쓰고 이런저런 폭언에 가까운 언사를 내뱉고 있는데, 아시다시피 이승만 독재를 정당화했던 것도 자유민주주의였고, 박종철 동문 열사 사건이 상징하는 70~80년대 가혹·삼엄했던 독재 검찰 공안세력이 바로 이런 역사의 뒷걸음을 정당화했던 이념으로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지금까지 사용해 오고 있다”라고 했다.
이어 “이 유령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서 요즘 잠이 오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는 “누군가는 말했다. 행동하는 양심, 그것이 어렵다면 그림자가 되어서라도 말을 해야 한다고. 벽에 대고라도 말을 해야 한다고”라며 “어느 한 동문의 메시지가 참 공감 간다. 행동하는 양심이 어렵다면 서명하는 양심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 심정으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했다”라고 밝혔다.
정병문 ‘부끄러운 서울대 1만인 선언모임’ 공동대표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불의에 항거한 4·19혁명 정신을 언급하며 “헌법의 모든 법질서가 이 두 가지 이념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두 가지 이념이 오늘날 대통령 선거에서 굉장히 훼손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정 대표는 “막말하는 후보가 우리와 같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고, 법을 공부했으며, 검사를 한 사람”이라며 “어떻게 저런 말이 오갈 수 있는지, 너무 문제가 심각하고 부끄럽다 여겼다. 이는 부끄러운 것을 넘어 사죄해야 할 부분이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이런 세상 되도록 방치해 죄송하다”
전우용 사학자는 서울대 출신들이 사회의 기득권이 되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며 사죄했다.
전 학자는 “내게 대학생 친구 한 명만 있었으면 했던 전태일의 말과 광주에서 제 또래 젊은이들의 함성과 절규가 늘 마음속에 있었다”라며 “서울대라는 좋은 시설에서 훌륭한 스승에게 배우면서도, 살아가며 갚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 많은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요즘은 모든 것이 자기가 열심히 공부해서 얻은 권리니까, 나눌 수 없다는 친구들이 많아졌다고 본다. 사회에 대한 책임, 가볍게 여기면서 사회가 빌려준 것을 자기 것이라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게 된 것”이라며 “이런 세상이 되도록 방치해서, 우리 스스로가 후배들에게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되지 못해서 부끄럽고 미안하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공화국의 어떤 권한과 권력도 담당자나 종사자의 사유물이 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어떤 권력이든 국민에게 나오는 것이지, 시험성적으로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최대의 적은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욕망이고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태도”라며 “국가를 사유화하려는 욕망에 잡아먹히지 않게 하는 것이 서울대인이 저지른 부끄럽고 미안한 일을 사죄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회견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77학번 우희종 교수도 “우리 시대 때 서울대라 함은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가는 국립대학으로 등록금이 쌌다는 것”이라며 “등록금이 싸다는 것은 이미 사회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다는 의미”라고 짚었다.
이어 “현재 서울대생이라 함은 기득권에 포진해서 자기만 아는 사람들, 이런 얘기가 자연스럽게 된 것 같다”라며 “엘리트란 말이 꼭 나쁜 의미는 아니지만, 이러한 엘리트주의가 보수진보뿐만 아니라 여당야당에도 너무 깊게 자리 잡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성해야 할 지점”이라고 사죄했다.
또 “역사의식 없이 서울대 출신이라고 쉽게 진입한 기득권 속에서 영달만 누리다 인문학적 소양 없이 100년 전부터 내려온 적폐집단의 주역이 되어 우리사회를 퇴행시키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참담하다”라며 현재 이루어지는 대선 상황에 대한 심정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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