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 마을미디어 공든 탑 무너뜨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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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마을미디어 정책은 민간기구인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가 위탁 받아 사업 전반을 운영하며 단체지원(공모) 사업을 통해 개별 마을미디어에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번 예산안이 현실화되면 단체 지원 예산 항목이 사라져 일선 마을미디어들은 사업 자체를 수행하기 어려워진다.
이번 예산 삭감은 오세훈 시장이 지난 9월 ‘서울시 바로세우기’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 곳간이 시민단체 전용 ATM기로 전락했다”고 발언할 때 예견됐다. 당시 오세훈 시장은 시민사회와 연관된 사업 예산을 대폭 삭감하겠다고 밝혔는데, 마을미디어 역시 시민사회 협력 사업의 한 축이었기에 같은 기준의 삭감이 이뤄진 것이다.
서울시 예산안은 민주당이 다수를 점한 시 의회에서 조정될 수 있다. 다만 시 의회에서 예산을 복원시켜도, 서울시가 예산을 사용하지 않는 식으로 대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마을미디어, 사업 전면 조정 불가피
서울시 예산안이 통과되면 일선 마을미디어들은 사업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가 11월2일부터 5일까지 지난 3년 간 마을미디어 사업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단체 운영담당자를 대상으로 긴급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공모 사업이 사라질 경우 31%가 ‘콘텐츠 제작 약화’를 우려했다. 이어 ‘인력 문제’ 18.3%, ‘단체 운영 문제’ 15.5%, ‘교육 축소’와 ‘지역 네트워크 약화’가 각각 12.7% 순으로 나타났다.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설문에서 한 응답자는 “한 경로당은 2015년부터 마을미디어 콘텐츠 제작 지원으로 미디어교육과 콘텐츠 제작으로 어르신들이 삶이 질을 향상하고 치매를 예방하는 등의 일을 했다. 만일 이를 중단한다면 인력, 장소, 기기, 교실 모든 것이 중단되고 우선 어르신들의 삶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북 마을미디어 와보숑TV(wabosyongTV)의 경우 공모 사업이 예산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와보숑TV의 제작자 A씨는 “예산 삭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발표를 보고 너무 황당했다”고 했다. 2년 간 마을 미디어 제작자로 활동한 60대 여성 B씨는 “최근 마을 미디어 관련 예산이 삭감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제작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며 “마을 미디어 제작을 하는 이들은 제작 활동을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고 밝혔다.
B씨는 “갑자기 예산을 없앨 것이 아니라, 마을 미디어 제작자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시민 여론조사 등 절차를 거쳐야 하지 않나”라며 “이전 시장의 정책이라고 해서 지워버릴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이 활동을 원하고 있는지, 공동체에 필요한지, 제작자로 활동하는 시민들의 생각은 어떤지 등을 살피고, 가능하면 예산을 다시 살리는 쪽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마을미디어공동체지원사업 설계 과정부터 참여했던 허경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이사는 “2011년 하반기부터 서울시 담당부서, 지역미디어단체 등과 많은 논의를 통해 함께 결정하며 시작됐고 이후 매년 시, 민간, 의회가 함께 토론하면서 진행해온 사업”이라며 “오세훈 시장은 10년 간 사업을 함께 하며 행정과 민간이 쌓은 신뢰를 처참히 깨부수고 있다. 시간을 쪼개 사업에 참여한 시민들의 정성과 노력은 안중에도 없는 시정운영방식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마을미디어 단체들은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지난 4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발하기도 했다. 이들 단체는 △시민참여와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을 합리적 근거와 명분없이 왜곡하고 폄훼하는 행위를 중지할 것 △풀뿌리 주민단체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의 자발적 공익활동 지원예산의 일방적 삭감을 중단할 것 등을 촉구했다.
박영주 서울시동부권 NPO지원센터장은 “마을 미디어는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기록해나간다. 지역 공동체와 소통해가면서 미디어 경험을 만들어가고 있다. 마을미디어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주민 참여 시대를 역행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마을미디어 사업 10년의 가치
올해 10년차를 맞는 서울 마을미디어사업은 다양한 부문에서 가치를 보여왔다. 마을미디어는 각 지역의 마을신문, 공동체 라디오 등을 통해 소외계층을 비롯해 다양한 주민들이 직접 콘텐츠를 만들며 마을 자치는 물론 시민의 ‘커뮤니케이션 권리’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
2012년 서울에 공동체라디오 및 마을신문은 5곳에 불과했으나 서울시 마을미디어 활성화 사업 이후 꾸준히 증가했다. 2021년 기준 55곳의 마을미디어가 서울시 사업 지원을 받아 활동할 정도다.
와보숑TV 제작자 A씨는 “마을미디어는 공공방송의 틈새적 역할을 할 수 있다. 공공방송에서는 미처 다루지 못하는 동네에서만 일어나는 일을 마을미디어가 기록하며 공동체에 기여한다”고 했다. 일례로 성북구는 구청에서 도로 면적을 늘리기 위해 50년이 된 나무를 자르려 했는데, 와보숑TV에 방영된 ‘주민 토론회’를 통해 반대 의견이 나왔고 관련 시도는 중단됐다.
성북구 마을미디어 잡지 성북동천은 서울시가 성북구에 ‘대표보행거리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행권이 개선되는지 여부를 조명했다. 이후 주민들이 ‘보행권을 고민하는 성북동 사람들의 독서모임’을 열고 ‘성북동 개발계획검토 워크숍’ ‘환경 부정의투어’ 등을 진행했다. 사양산업이 된 봉제업 중심 지역인 서울 창신동의 창신동라디오는 봉제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봉제마을 살 길 찾기’ 간담회를 열었다. 박원순 시장이 출연했을 때 봉제 사업자들을 위한 세무업무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마을미디어는 지역별 커뮤니티 형성과 소외계층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콘텐츠 제작 지원 등을 곳곳에서 이어오고 있다.
장은경 미디액트 사무국장은 “오늘날 유튜브가 보편화됐지만 소외된 곳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의 이야기를 미디어를 통해 전하고,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권리’ 측면에서 봐야 한다. 다양한 시민들이 마을미디어를 통해 마을에 참여하는 통로로 활용해오고 있다. 미디어 복지 시대 진입 과정에서 마을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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