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의 참!]최재형·윤석열은 '진보정부'에 '위장취업'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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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중국 수나라 하면 수양제의 폭정과 ‘고구려에 깨진 나라’가 연상되겠지만, 처음 과거제를 도입해 세습귀족의 폐단을 없앤 나라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958년 고려 광종 때 과거가 도입된 뒤 고위관료 등용문이 됐다. 1000년 가까이 과거가 존속한 이유는 ‘공정’의 상징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중국과 달리 양반제가 뿌리내린 조선에서는 후기로 갈수록 불공정이 활개 쳤다. 과거는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됐으나 일제강점기 때 고등문관시험과 해방 후 ‘고등고시’로 부활했다.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가치가 다양해진 사회에서 법률 과목 위주로 고위공무원을 선발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전 정권의 국정농단, 지금도 계속되는 검찰·사법부의 반인권적 작태와 제 식구 감싸기는 기수와 상명하복이 중시되는 고시제 탓이 크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문재인 정부 핵심 요직에 복무하다가 야당 대통령 후보로 떠오른 이들에게는 ‘고시 출신’이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행태는 현대판 과거제의 폐단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한국을 양극화 사회로 몰아넣은 능력주의 정점에 고시제가 있다. 1단계 과거를 대입 수능시험이라 친다면 2단계는 고시다. 수능 점수는 부모 소득에 거의 비례하는데도 ‘공정’의 허울을 쓴 채 개인의 능력을 재단하고 평생을 좌우한다.
백수 윤석열이 고시 9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부모 덕분이다. 당시 그렇게 할 수 있는 청년은 드물었고 의식 있는 청년들은 강제징집 또는 옥살이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사회현실에 눈감고 고시에 매진해 합격하면 남들은 평생 오르기 힘든 고위직으로 직행했다.
최재형 감사원장과 윤석열 검찰총장은 수구적 인물이다. 그럼에도 성향에 맞지 않은 정부의 핵심 요직을 차지한 것은 입신양명을 위한 ‘위장취업’이었나? 이들은 얼마 안 가서 감사와 수사의 정치적 독립이라는 미명 아래 정부의 발목을 잡다가 끝내 정치에 뛰어들었다. 막스 베버가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관료는 절대로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경고가 무색해졌다.
그들은 정치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국민이 불러낸 거라며 소명론을 편다. 국민이 그들을 불러낸 적이 있었나? 보수야당에 입당하고 대권에 도전하는 것은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의 정치적 중립을 스스로 부정하고 공직을 이용해 자기 길을 닦아 왔음을 입증하는 짓이다.
최 원장은 문 대통령이 탈원전정책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걸 뻔히 알면서도 경제성에 치우친 감사로 ‘원전마피아’를 편들었는데 이는 민주주의에 어긋난다. 그는 “하나님의 확신”이라며 “월성1호기를 조기폐쇄하면 문제가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고 했다는데, 그런 확증편향의 정신상태라면 감사는 왜 하나? ‘신의 계시’가 스스로 듣고 싶은 얘기를 해줄 텐데….
윤 총장은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막상 자신은 보수언론과 수구세력에 선을 대고 정치를 해왔다. 이는 검찰총장이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자기 이름을 빼 달라고 요청하지 않은 점에서도 입증된다. 검찰권력 사유화로 선택적 정의를 구사하면서 정치에 뛰어들 꿈을 키워온 정치검사의 전형이다.
김동연 전 부총리도 정치적 야망을 키우는 듯한데, 그도 문 정부 초기 경제정책에서 선출권력과 대립한 관료였다. 최근엔 “현금복지가 아니라 기회복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복지는 기회를 못 누려서 가난해진 사람에게 돈을 주는 건데 복지를 하지 말자는 건가? ‘자수성가 신화’는 ‘능력주의 화신’이다.
고시에 의한 고위관료 양성제도는 한계에 왔다. 엘리트의식은 공공에 봉사하는 직무에는 오히려 걸림돌이다. 그들 중 봉사하는 우수 관료도 많지만, ‘소년등과’에 성공해 선민의식과 권위의식에 찌들거나 출세를 위해 시류에 영합한 이도 많다.
<이완용 평전>에는 독립협회 회장을 지낸 엘리트 관료가 친미파를 거쳐 친일파로 변신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완용은 1882년 과거 급제자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되자 “노무현씨”라고 부른 우병우 검사는 최루탄이 난무하는 영화 <1987>의 해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자였다.
고위관료 충원제도가 없으면 행정이나 법률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고들 하지만 그건 기우다. 정부보다 더 치열하게 경쟁하는 기업의 세계에서 고위직을 ‘일괄공채’하는 데는 없다. 세계적 기업 최고경영자(CEO)들도 처음에는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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